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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인터뷰

#17 “일단 박차고 나가면 길이 보일 거예요”

2020년 6월 23일(화)


최유진 HGI 재무회계 시니어 매니저

대학원 석사,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 취득, 외국계 회사 재무회계 담당 파트타임 근무. 이 모든 이력은 소셜 임팩트 투자 기업 HGI의 재무회계 시니어 매니저 최유진 님이 육아를 하며 이뤄낸 성취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10여 년간, 단 한 순간도 사회에 발 디디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도, 누군가의 기준에서 그녀는 이따금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 일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고군분투 했지만 자꾸 변두리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던 순간 최유진 님은 위커넥트를 통해 HGI를 만났다.


유진님은 HGI(HG Initiative)에서 재무회계를 담당하고 계신다고요.

네, HGI 회계 담당자로 입사했고, 인사 및 경영지원 업무도 함께 하고 있어요. HGI는 현재 4개의 자회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저는 모회사의 재무회계 담당자로서 자회사의 자금관리 업무도 맡고 있죠. 사실 이제 입사한 지 3개월이 막 지났거든요.(웃음) 입사하자마자 법인세 신고기간이 닥친 데다, 여러 업무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제 좀 괜찮아지셨어요?

3개월 지나니까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이전까지 세무 관련 일은 하지 않았거든요. 이론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실무를 접해본 건 처음이라 챌린지라고 생각하며 업무에 임하고 있어요. 세무회계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싶어서 HGI 입사를 선택한 것도 있고요. 하나씩 벽돌 깨기 하는 마음이에요.(웃음)


HGI는 임팩트투자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회사인지 소개해주세요.

저희 회사는 공동체를 위한 부동산 개발과 소셜벤처 투자를 하는 회사에요. 단순히 수익을 목표로 하는 일반적인 투자와 달리, HGI의 임팩트 투자는 실질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는 극초기 소셜벤처를 지원해 성공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죠. 따라서 투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 회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예요. 실제로 저희의 투자를 받은 회사들은 색채가 확실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예컨대 ‘마리몬드’도 HGI의 주요 투자처 중 하나인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잖아요. 이렇게 특정한 임팩트를 추구하는 회사는 개성이 뚜렷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기에 투자를 받기가 어려울 수 있거든요. HGI는 그런 가치 있는 회사를 발굴해 사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HGI에 입사하기 전, 육아로 인한 업무 공백이 있으셨다고요.

아예 일을 하지 않았던 기간은 3년 반 정도이고요. HGI 입사 직전까지 외국계 통신업체에서 주 20시간 파트타임으로 재무회계 업무를 맡아 했어요.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 제가 정규직으로 일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취직을 준비하다가 위커넥트를 만났고, 덕분에 HGI에 입사하게 된 거예요.



이전 경력이 궁금해요.

2003년경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비행 다니며 해외 고급 호텔에서 투숙하는 경험이 쌓이니 호텔 산업에 관심이 생겨서 2005년에는 파크하얏트 호텔 오프닝 멤버로 이직했고요. 객실부에서 일하며 손님들 체크인, 체크아웃을 도왔는데 결제 정산 업무를 맡으면서 숫자 다루는 일이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학원에 다니며 회계학 학점을 이수했고, 입사 2~3년차쯤 회계팀으로 직무를 변경하면서 지금까지 커리어가 이어져 왔어요. 파크하얏트에서 4년간 근무하고, 후에 JW메리어트 호텔에서 2013년까지 일했죠. 그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어요.


출산 후에는 육아휴직을 하셨어요?

맞아요. 2010년 12월에 출산해서 1년간 휴직을 했어요. 그런데 복직 의사를 밝혔더니, 회계팀에는 자리가 없으니 판교에 있는 세일즈 부서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인사팀에서 가능한 자리를 최대한 알아봐 준 것일 텐데, 그때는 오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하던 직무도 아니었고, 출퇴근 거리가 너무 먼 곳으로 배치되었으니까요. 결국 퇴사를 했는데, 당시에 제가 호텔경영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거든요. 이참에 회계학 학점 이수한 걸 토대로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을 봐야겠다는 들어 공부를 시작했죠. 퇴사 후 공백 기간 동안 대학원을 다니면서 회계사 시험을 준비해 2015년에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럼 육아, 석사,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 취득을 동시에 하신 거예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데요!

돌아보면 저도 ‘어떻게 했을까’ 싶어요.(웃음) 승무원이었고 호텔에서도 오래 일했으니 영어를 못 하는 건 아니었는데, 회계법을 영어로 공부하려니 정말 어렵더라고요. 절박함으로 견뎠던 거 같아요. 저는 퇴사 후에도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어요. 아이는 시터 선생님께 맡기고요. 사회에서 멀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떻게든 회사 다닐 때와 똑같은 패턴을 유지하며 하루를 보낸 거죠.


다시 복직할 때를 대비해 계속 준비를 하셨던 거네요.

맞아요. 저는 육아보다 일이 도피처일 때가 많았거든요. 당시에 남편하고 무척 많이 싸웠어요. 남편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데, 늘 나만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판단해야 했으니까요. 무언가를 하려면, 내가 없어도 집안의 모든 게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혼자 다 잘하려고 애썼던 게 좀 아쉬워요. 친정이든 시가든 도움을 요청했다면 얼마든지 들어주셨을 텐데, 가정을 꾸린 이상 모든 건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 시간을 더 혹독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노력들이 채용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작년에 마흔한 살이었거든요. 이제 아이가 많이 컸으니 회사에 취직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면접을 보러 다녔어요. 그런데 40대라는 나이도 만만치 않고, 아이 키우느라 정규직 일자리를 떠나 있었던 시간이 너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제 딴에는 육아와 일을 둘 다 놓지 않으려고 대학원에 다니고 회계사 자격증도 따고, 파트타임으로 재무회계 업무를 계속 이어왔던 건데 그건 저만의 스토리였을 뿐이고, 고용주 눈에는 ‘육아로 인한 공백이 있고 마지막 경력은 파트타임을 한 경단녀’로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파트타임이었지만 분명 중심 업무를 담당했고, 그동안의 노하우가 제 안에 쌓여 있는데 번번이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는 거예요. ‘오랜 기간 파트타임으로 일했기 때문에 디렉터 채용은 어렵겠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너무 늦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고, 더 잘해보려고 했던 것들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안 좋았죠.


너무 힘들었을 거 같아요.

‘녹록지 않구나’ 싶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파트타임으로만 일해야 하나, 그러면서 아이 키우고 살 팔자인가?’ 싶어서 속상했던 시기에 위커넥트를 알게 됐어요. 위커넥트는 후보자가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걸 인정하는 회사와 연결해준다는 점이 좋더라고요. 이전에도 헤드헌터를 많이 만났지만, 이렇게 저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회사를 추천해준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더 낙담하게 되는 경험이 많았던 거 같아요. 애초에 제 경력과 회사의 요구가 맞지 않는 곳에 지원을 했던 거죠. 그런데 위커넥트에서 연결해 준 회사는 육아로 인한 공백과 그 사이에 쌓은 저의 노하우들을 알아봐 주는 곳이라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자리에서 HGI 면접을 봤는데, 이전 면접들과 다르게 마음 편히 임했던 기억이 나요.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보통 10시에 출근해서 오전에는 주로 집중할 수 있는 자금 관련 일을 해요. 돈이 얽힌 일들은 실수하면 안 되니까 정신이 맑은 오전에 하는 편이에요. 오후에는 경영지원이나 인사 업무를 처리하고 5시에 퇴근해요.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회계 업무의 기본적인 로직은 같지만, 어떤 회사인지에 따라 회계 처리는 달라지거든요. 그런데 투자 회사의 회계를 맡은 건 처음이라 그게 힘들었어요. 쉽게 말해 이자를 주고 받는 일을 하는 회사는 다녀보지 않았으니까요. 또 인사총무 업무도 처음이라서 낯설어요. 안 해본 것들을 익혀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제가 출산으로 인해 3년 반의 공백기가 있었고, 파트타임으로 3년 반을 일했거든요. 그렇게 필드의 중심에서 떠나있었던 시간을 2020년 한 해동안 캐치업하고 싶어요. 특히 이제 채용에도 관여하게 됐으니 인사 업무에 대해 더 공부하고, 세무 쪽도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전산세무자격증을 따려고 해요. 업무를 통해 많이 배워서 연결회계나 법인세 같은 고급 영역을 마스터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장기적으로 HGI에서 이루어가고 싶은 목표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투자한 기업들은 초기 창업 단계이기 때문에 회계 담당 인력이 없거나, 무척 적어요. HGI의 가족이 된 회사들이니, 제가 가진 지식을 토대로 그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건 아직까지는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인데요. 멀지 않은 미래에는 HGI만의 채용툴을 만들고 싶어요. HGI가 작년에 금융업으로 등록되긴 했지만, 일반적인 금융회사나 투자회사라고 생각하고 입사한다면 적응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 기업의 가치에 공감하는 일을 해요. 업무를 할 때 가깝게는 내 주변, 멀게는 내가 속한 조직과 사회를 아름답고 선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죠. 따라서 일반적인 채용 방식으로는 옥석을 가려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자체적으로 지원자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채용 방식을 체계화하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지금 과거의 유진님처럼 경력 공백을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실 텐데, 그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저는 전업주부도 해봤잖아요. 그것도 무척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계속 나가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고민이 든다는 건, 그만큼 일에 대한 열망이 큰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 일단 집을 박차고 나가서 뭐라도 실천하셨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게 아니라,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간단한 알바라도요. 다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언어를 익힐 시간이 필요해요.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자연스레 사회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시간을 오래 보내다가 갑자기 취업을 준비하려고 하면 너무 막막하고 두려울 거예요. 그러니 일단 집을 박차고 나가서 워밍업 하는 시간을 가지셔야 해요. 만약 독박육아를 하고 있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드라마 보는 시간 조금 줄이고, 유튜브로 TED 강연 등을 보시는 것도 도움이 돼요. 그럼 간접적으로나마 지금 사회에서 중요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거든요. 어쨌든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건, 사회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미니까 다시 사회적 언어와 가까워질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백 기간을 겪어 본 유진님의 조언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보는 분들께 더 와닿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가혹한 시간을 겪으면서 여자에 대한 인류애가 생긴 느낌이에요. 저희 팀에도 여자 후배님들이 많거든요. 그 분들께 잘해드리려고 노력해요.(웃음) 여자들이 좀 더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떤식으로든 사회에서 자리를 보전하고, 목소리를 내는 여자들이 많아져야 고용문화도 조금씩 바뀌어 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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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

다양한 매체에서 글이 중심이 된 콘텐츠를 제작했다. 독립잡지 <나이이즘>의 에디터로 참여했고, <채널예스>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은 워킹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