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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나를 기준으로 일의 환경을 만드는 일, Flexible Work

2019년 11월 4일(월)


나의 반(半) 원격 근무 경험기

저는 일주일에 사흘은 서울 성수동 카우앤독에서, 이틀은 저의 집이 있는 세종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의 3~40%를 원격 근무로 보내는 셈이죠. 서울에 직장을 두고 세종으로 이사를 한 지 4년 반쯤 되었는데요, 매일 출퇴근을 해보기도하고 주말부부로 지내거나 매일 원격으로 일하기도 하는 등 여러 실험을 해봤어요. 그리고 지금은 절반의 원격 근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슬랙, 줌, 구글드라이브 같은 디지털 협업툴이 익숙하다면 원격으로 일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질 거에요.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일한 경험들이 있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기술적인 인프라보다도 원격근무 도입 초반부에 더 신경썼던 부분은 저에게 딱 맞는 일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었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 원격근무에 적합한 일을 찾고 적절히 배치하는 것과 내가 집중해서 일할 장소를 찾는 등 결국 ‘나를 기준으로 일의 환경을 만드는 법에 대한 답을 찾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1)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적합한가요?

처음에는 원격 근무 환경이 다른 사람의 방해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하나의 업무에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block time)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험해보면서 알게 된 것은 기획안이나 글을 쓰는 일을 할 때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보다 팀과 바로바로 의견을 교환하고 적절하게 리프레시할 기회들이 있을 때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세종에서 일하는 날에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측정가능한 업무 위주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렇게 하면 하루 일과를 마칠 때 얼마만큼 to-do를 완수했는지 확인할 때 쾌감을 느끼죠.

어떤 일을 원격으로 할지 반대로 팀과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할지는 사람의 성향마다 다른 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두고 직접 실험하면서 나에게 맞는 최적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은 원격 근무 초반에 반드시 필요한 스텝입니다.


(2) 어떻게 일하는 것이 나에게 적합한가요?


너무너무 맛있는 아인슈페너를 파는 카페를 찾았을 때의 쾌감이란!

① 나에게 맞는 장소 찾기

세종에서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원격 근무 초기 저에게 아주 중요한 미션이었어요. 원격으로 일할 것을 대비해 집에 작업실을 만들고 책상과 의자도 새로 구비했지만 저의 경우 한 공간에서만 쭉 일하는 것은 업무 효율성을 담보하지 않았어요.

세종에는 카우앤독같은 코워킹스페이스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하기 좋은 카페를 찾는 것이 매주 숙제이기도 하고, 탐험하는 재미를 주기도 했습니다. 노트북으로 일하기에 딱 맞는 의자와 책상 높이, 일하기 알맞은 정도의 소음, 맛있는 커피, 집에서의 거리와 주변환경 등 여러 기준을 두고 매일 평가했습니다. 결국 Best Fit의 카페를 찾고는 가던 곳만 계속 가게 되었지만요.

② 일하는 시간과 개인 시간의 경계선 긋기

원격으로 근무할 때는 일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일이 안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적신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저만의 루틴을 만들었죠.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일을 시작하기 보다 30분 정도 운동 후 샤워한 다음 상쾌한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았고, 일을 마칠 때에는 바로 저녁 식사를 시작하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일 모드 스위치를 껐습니다. 이 루틴을 유지하면서 몸이 분리되어야 정신적으로도 분리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루틴을 만들어 경계선을 긋는 건 원격 근무 시 일을 너무 많이 하기도, 너무 적게 하기도 하는 그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걸 도와줄 거에요.

③ 나 자신만의 기준 갖기

사람들은 긴 통근 시간이 괴롭다고 말하지만 저의 경우, 고속버스나 열차를 타고 오가는 시간이 혼자서 오롯이 보내며 여러가지를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입니다.

저는 출근길(말그대로 길 위에서!)에는 주로 이메일을 쓰고, 퇴근길에는 그 날 끝내야 할 잔업을 합니다. 표값이 지하철 요금보다 10배 정도 비싸서 그렇지, 마치 타이머를 맞춰두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묘하게 집중이 잘 되는 공간이기도 해요. 어떤 날은 ‘무궁화호에 탔으면 완벽히 끝낼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할 정도로요.

이 생활이 반복되면 이 공간에서 하기에 적합한 일들을 따로 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밤에 집중이 잘 되서 그 때 노트북을 다시 켜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직장 생활과 개인 생활의 균형을 잡는 기준은 한 가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생산성을 높이려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죠. 결국 나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일의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KTX안에서의 모습 - 와이파이, 노트북, 이어폰 3종 세트


(3) 새로 생긴 일 습관은 무엇인가요?

원격 근무의 핵심은 자기 관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Work@Home” 일지를 남기고 계획한 업무와 완수한 업무, 예상 시간과 실제 걸린 시간 등을 비교하고 성찰을 남기고 있어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해 하는 업무 트래킹이죠. 이렇게 몇 번 하다 보면 업무 완수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우선순위가 높은 일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유연하게 일하지만 일주일 중 서울로 출근하는 요일을 고정해 놓았는데요, 그 이유는 팀과의 업무 진행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였어요. 작게는 미팅 일정을 잡을 때 제 유동적인 스케줄이 팀원들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부터, 크게는 팀의 업무 프로세스를 예측 가능하게 설계할 수 있게 해 협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일 습관들은 나 자신이나 팀에게나 투명해지는 시간이란 생각도 들어요. 일지를 쓰다보면 진짜 나의 모습을 직면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죠. 또 팀원들과 업무 프로세스를 긴밀히 공유하며 같이 일하는 사람의 다음 스텝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건 서로에게 진실해지는 시간이구요.


계속 해보겠습니다.

굳이 이렇게 까지 일하면서 세종에 살아야 하나요? 라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남편 때문만에 세종으로 온 것만은 아니에요. 주말 부부는 싫었고 세종에서는 서울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쾌적한 집을 구할 수 있었죠. 또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회사에서 일했고, 기질 상 새로운 도시에 사는 것이 부담도 없었고요. 그래서 저에게 세종에 사는 것은 여러 상황들을 종합해 봤을 때 최선의 선택지 조합이었어요.

그러나 한 번의 경력 전환 시기에 ‘결국 어느 한 명은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이런 생활을 4년 넘게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최선의 선택의 조합을 만들어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주변에 생겼습니다. 계속 해보려는 저의 끈질김이 전우애를 선물해줬달까요? 저에겐 가장 뿌듯하고 감사한 선물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몇몇 사례를 넘어 구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겠죠. 그래서 여성 인재와 유연한 일자리를 연결하는 위커넥트의 미션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도 계속 하고 싶고 능력은 있는 여성들도 아이를 갖고 나면 일터를 떠날 이유가 더 많아지죠. 유연성이 주어졌더라면 계속 일했을 확률은 높아졌음 높아졌지 낮아질 리는 없을 거에요.

유연한 업무 환경을 요구하고 협상하는 사람들이 커리어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커리어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유연성을 원한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유연하게 일할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보기 드문 사례였던 Flexible worker(주20시간 파트타임 근로, 재택/원격근무, 하나의 풀타임 잡을 2명이 공유하는 경우 등)들이 좀 더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노하우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저도 고민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집안일에 있어 재택 근무자는 파트너로 부터 조금 더 가중된 책임감을 느끼진 않는지 그에 대해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가는지도 궁금하고 원격근무자들끼리 팀워크를 다지는 시크릿 레시피도 알고 싶어요. 또 유연하게 일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고민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고 싶고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세요!

노유진 위커넥트 디렉터 & 공동창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