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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모두의 칼럼] ‘인재상’ 대신 ‘조직상’을 생각하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2020/11/17)

2020년 11월 28일(토)


코로나19 장기화로 일하는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정말 일이 될까?’ 하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한 재택 근무도 어느덧 일상화되고, 감염과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구성원의 자율에 맡기거나 제도로 정착시킨 회사들이 하나둘 늘었다. 우리 회사도 거주지나 업무 성격에 따라 시행하던 단시간·재택 근무를 전격 도입했다. 구성원들은 “출퇴근에 드는 시간이 줄어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고 업무 생산성과 삶의 질 모두 높아진 것 같다”며 만족했다. 그러나 이런 꽃놀이도 잠시,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려왔다.

내가 만난 한 소셜벤처 대표 A는 “처음에는 재택 근무가 직원들을 위한 혜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면서 “같은 공간에서 일할 땐 소통도 편하고 속도도 빨랐는데 재택 근무를 시작하니 쉽지 않더라”며 초반의 고생을 털어놨다. 중간 지원 조직에서 이사로 근무하는 B는 “당연히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집이 비좁거나 도저히 재택 근무를 할 수 없는 환경의 직원에게까지 재택 근무를 강제할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직원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면 소통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요하는 비대면 소통에 피로감을 느끼고, 업무의 양은 같거나 되레 늘어났는데 맥락에 대한 이해나 상호작용 없이 진행된 업무 결과에 좌절해 번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 극성일 때 입사한 어느 신입 직원은 동료들과 만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다 보니 극도의 고립감과 피로감을 느꼈는지 한 달도 안 돼 퇴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못 가는 아이를 돌보며 동시에 일해야 하는 워킹맘들에게선 ‘곡소리’가 들려왔다. 한 소셜벤처의 팀장인 워킹맘 C는 “재택과 돌봄을 동시에 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에 나갔다”면서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일에 집중하며 퍼포먼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특히 취학 아동을 양육하는 워킹맘들의 경우 코로나 이후 원격수업 등으로 인한 자녀의 학력 저하를 걱정해 회사를 그만두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2분기 일자리를 잃은 41만명 중 여성이 25만명으로 남성(16만명)의 1.5배에 이른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고학력 경력 단절 여성이 많아지고 반대로 어려워진 생계에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노동시장에 나오는 여성이 늘어나는 패턴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위커넥트가 지난 9월 ‘구성원의 일-생활 균형을 위한 우리 회사의 제도와 문화’를 주제로 MZ세대 635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엄마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14.5%p, 아빠는 13.2%p가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워킹맘은 다른 근로자 집단에 비해 로열티가 높은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세팅된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공동체에 대한 강한 소속감, 회사의 지원에 대한 고마움 등을 이유로 조직과 일에 더욱 몰입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셜벤처를 포함해 사회적경제 분야의 여성 종사자 비율은 60~70%에 이르고, 결혼과 출산 등으로 가정확대기를 앞둔 MZ세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회사의 미션을 이해하고 자율과 책임에 기반해 일하는 조직의 허리이자 기둥인 MZ세대 구성원의 생애주기 변화는 조직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미래다. 이들의 근속과 몰입을 위해서는 조직이 먼저 그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가장 먼저 일과 가족, 구성원을 지원하는 ‘일-생활 균형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CEO와 경영진부터 구성원이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현재 일하고 있는 MZ세대가 회사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조직문화 요소로 ‘유연 근무 제도와 인프라’(2.89, 5점 만점)와 ‘CEO 및 경영진의 지원’(3.03)을 꼽았는데, 그렇기에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존중에 기반해 조직의 제도와 문화를 구성원과 함께 만들어가고 더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도적으로 자주 대화해야 한다. 가장 만족하는 것으로는 ‘일의 명확한 권한과 책임’(3.76), ‘동료의 지원’(3.71), ‘직속 상사의 지원’ (3.54) 등을 꼽은 것은 유능하게 일하고 동료와 협업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두는 MZ세대의 특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조율하며 탁월한 업무 성과를 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조직의 목표가 생존이 아니라 성장이라면 결국 구성원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회사에 적합한 인재상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회사가 닿아야 하는 ‘조직상’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기사 원문 출처 http://futurechosun.com/archives/52208